2009년 8월14일,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가 무너졌습니다.
파기환송심(4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창석)는 이건희(사진) 전 삼성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하면서 말입니다.(이건희 회장이 벌금을 내지 않으면 하루 일당을 1억1000만원으로 계산해 노역장에 갇혀야 합니다. )
양도소득세를 6년간 465억원 포탈한 데다 아들 이재용씨에게 주식을 헐값에 넘겨 삼성SDS에 227억원의 손해를 입혔다고 새롭게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재판부는 형량을 유지했습니다. 무기징역이나 징역 5년 이상을 처벌받는 배임죄가 더해졌는데 형량이 똑같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사회가 합의한 상식이 글로 옮겨진 것이 법이라는 제 견해로는 받아들일 수 가 없습니다.
특정경제가중처법법상 조세포탈죄의 법정형은 무기징역이나 징역 5년 이상이고, 배임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희 전 회장처럼 여러 죄를 저지른 사람을 ‘경합범’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죄가 규정한 법정형에서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합니다. 이를 적용하면 이건희 회장은 징역 7년6개월 이상 받아야 합니다. 법원이 7월1일 이후 기소된 사건에 적용하는 양형기준제에 따르더라도 50억원 이상의 배임은 징역 4년 이상 선고돼야 합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각종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1. 형량은 비난가능성에 따라 정한다.
2. 삼성SDS 손해액이 총 227억원이라 많아 보이지만 개별 주식(신수인수권)으로 따져보면 이재용 남매에게 2분의 1 값에 판 것이다. 그렇게 헐값은 아니다.
3. 비상장법인의 공정한 주식가격이라는 게 법령이나 대법원 판례로 정해지지 않았던 터라 이건희 회장이 범죄라는 걸 모를 수 있다.
4. 이건희 회장이 손해액을 삼성SDS가 갚았고 최근까지 삼성SDS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5. 양도소득세를 6년간 465억원이나 포탈했지만 삼성전자 주식이 많이 올라서 수익이 많아진 거였다. 차명거래도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라 경영권을 확보하느라 그랬다.
6. 세금 8050억원을 납부했고, 벌금도 1100억원이나 부과된다.
7. 이 사건의 주식거래를 단기매매라고 보기 어렵고, 증권거래법은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이라서 형량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복잡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법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을 선고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배임으로 삼성SDS가 입은 피해, 조세포탈로 국가가 입은 피해를 이건희 전 회장이 돈으로 다 보상했기에 선처한다는 이야기이니까요.
특히 돈을 벌 목적이 아니라 경영권 확보를 위한 범죄행위여서 비난가능성이 적다는 재판부의 설명에는 할말을 잃습니다. 경영권을 확보해야 더 큰 돈을 더 오랫동안 번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입니다.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이병철-이건희-이재용으로 계승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삼성SDS 신수인수권부사채를 이재용씨에게 헐값에 넘긴 것도 삼성그룹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을 위한 법원의 변명(판결문)을 정리하면서 짜증나고 답답해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오늘을 증언한다’는 인내심으로 꾹 참았습니다. 한번 읽어보시죠.
1. 형법 근본 원칙인 책임주의에 따르면 형량은 범죄자의 책임 크기를 넘지 않은 범위에서 정해야 한다. 책임의 본질은 비난가능성이라 말할 수 있고 때문에 형량은 비난가능성의 크기만큼으로 결정한다.
2. 피고인(이건희)의 배임행위로 삼성SDS가 입은 손해액은 227억원에 이르러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러나 배임 액수는 신주인수권의 공정한 행사가격(1만4230원)과 실제 행사가격(7150원)의 차액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비난가능성은 개별 신수인수권의 저가발행 정도를 1차적으로, 손해의 총액을 2차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신수인수권 실제 행사가격(7150원)은 공정한 행사가격(1만4230원)의 절반 정도여서 지나치게 헐값이라고 볼 수 없다. 그만큼 비난가능성이 적어진다.
비상장법인의 신수인수권행사 가격을 공정하게 정하는 기준이 법령이나 대법원 판례로 존재하지 않아서 피고인(이건희)이 주식을 싸게 발행하는 것이 범죄라는 걸 몰랐을 수도 있다. 법령이나 판례가 존재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범죄를 저지른 것보다는 비난가능성이 적다.
피고인 이건희가 손해액 227억원 이상을 삼성SDS에 납부해 피해가 회복됐다. 또 불법이 저질러진 1999년 403억원, 2000년에 삼성SDS는 66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그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해 2008년 매출액 2조 5194억원, 영업이익 2597억원을 실현했다. 이러한 삼성SDS의 발전에 피고인이 기여했다.
3. 양도소득세 포탈 액수가 465억원에 이르고 범죄도 6년이나 지속돼 비난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포탈액수의 97%가 삼성전자 주식 관련이다. 삼성전자 주식이 1999년 초부터 2006년 말 사이에 크게 올랐는데 이를 차명계좌에 장기간 보유해 양도소득세가 많이 발생했다. 시세차익을 노린 것이 아니라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970년대 제정된 기업공개촉진법의 규제를 피하면서 대주주 지분을 보유하려고 선대회장 이병철 시절부터 차명계좌가 사용됐다.
피고인 이건희는 이병철로부터 상속받아 같은 방법을 계속 사용한 것이다. 주식명의자를 바꾸거나 증자대금을 마련하려고 주식을 일부 매도했고, 2004년부터는 차명주식의 규모를 줄여가는 중이었다. 증권거래법이 금지한 내부정보이용을 이용한 주식 매매를 했다는 증거는 없다. 범행의 동기, 수단, 결과를 보면 비난가능성이 상당히 줄어든다.
특히 피고인 이건희는 포탈세액을 포함해서 양도소득세 3071억원, 증여세 4515억원, 종합소득세 464억원 등 합계 8050억원을 모두 납부했다. 이로써 책임이 감소했고 피고인 이건희에게 벌금 1100억원이 부과되는다는 점도 참작했다.
4. 증거거래법 제188조 제1항은 내부자가 회사의 주식을 매매하는 경우 회사의 정보를 불공정하게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단기매매의 차익은 반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주식거래는 단기매매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비난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증권거래법은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이어서 피고인 이건희 형량을 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해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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